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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아내와 출산 준비를 하며 가장 크게 마주하게 되는 부분은 모든 출산 관련 프로그램과 서비스에는 등급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 등급이 사회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주변에 출산을 경험한 혹은 경험하게 될 지인들은 우스개 소리로 근미래의 유치원생들은 자신이 태어난 산부인과와 자신의 생에서 첫 보름을 보낸 산후 조리원 타이틀로 친구들을 구분지어 사귀게 될 것이란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현상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1979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구별짓기 La distinction』에서 '디스땅시옹 Disticntion' 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문화는 상류층이 하층민과 자신들을 '구별 짓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주장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에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한 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소스타인 베블런 Thorstein Veblen입니다. 베블런은 1899년 자신의 저서 『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가격이 올라감에도 몇몇 재화의 소비가 감소하지 않음을 발견하고 이를 분석하여 상류층(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 경향이 있음을 밝혀냅니다. 이것이 바로 베블런 효과 Veblen effect.


구별 짓기 위한 도구로서의 문화. 그리고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부각시키기 위한 과시적 소비. 80년의 시간차를 두고 있지만 결국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두 학자들의 차분한 어조를 곰곰이 씹어보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도 왠지 모를 씁쓸한 맛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문화를 공부하겠다고 나선 저의 포부는 소수의 만족과 지적,심적 충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왕도를 발견하기 위함이었죠.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제게 엄습하는 자괴감은 이 빌어먹을 시스템 안에서는 도대체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는 '진리'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굳게 마음을 먹어 봅니다. 제가 이미 높이 쌓여진 돌더미 위에 다른 돌을 얹는 것이 아니라, 황량한 들판에 부삽 한 삽질이라도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씨를 뿌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기를, 누군가에게는 물을 부어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구별 짓는 문화가 아닌 상생하는 문화, 과시하는 소비가 아닌 살리는 소비. 그것이 제가 공부하는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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