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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들이 왜 모이는지, 또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오래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우리나라의 민주화 투쟁 등 극적인 역사의 순간에는 항상 군중들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있었지요. 최근 제1차 및 제2차 민중 총궐기 대회의 현장을 전하는 여러 목소리들을 접하면서 군중행동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새삼 깨닫습니다. (관련자료 및 기사: 1, 2, 3) 이번 포스팅에서는 군중행동, 특히 군중에 속한 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또 군중의 행동 방식이 어떤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분석한 이론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군중(Crowd)에 대해서는 여러 개념이 존재합니다. 블러머(Blumer, 1951)는 4가지 타입으로 정리했는데요, 그냥 모여있는(Casual)인 군중, 특정 성향을 공유하는(Conventional) 군중, 의견을 표출하는(Expressive) 군중, 행동하는(Acting) 군중 등입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까요? 공중(Public)은 어떠한 이슈에 대해 논의를 공유하는 집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슈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공중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대중(Mass)는 어떠한 메시지(주로 대중매체를 통한)의 전달 대상이 되는 그룹을 의미합니다. 다분히 수동적 집단의 개념이지요. 사회운동(Social Movement)는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해 적극적 의견 개진과 행동에 나서는 군중 또는 그 행위 자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흔히 폭도(Mob, Riot)라고 부르는 폭동을 일으키는 집단도 크게 보면 군중에 속하는 하위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개인들이 어떤 사회적 그룹에 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젝스(2008)는 크게 다섯가지 이유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동료의식(Companionship)입니다. 함께 모여서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지요. 두번째는 생존과 안전(Survival and Security)을 위해서 입니다. 함께 있으면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지요. 셋째, 소속감과 위치(Affiliation and Status)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넷째, 권력(Power and Control)을 획득하기 위해서지요. 마지막으로, 특정한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많은 군중행동이 이 부류에 속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차원의 군중이 존재하기 때문에 군중행동도 그 범주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군중행동은 그 의도의 수준과 형태에 따라 크게 군집 행동(Swarm Behavior)과 집단 행동(Collective Behavior)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선, 군집 행동은 동물들이 무리지어 이동하는 것(Herding)처럼 특정한 의도없이 떼를 지어 행동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출퇴근 시간의 직장인 행렬을 떠올려볼 수 있겠네요. 이러한 군집행동과 관련해서는 시뮬레이션 기법을 활용해서 이동 경로를 예측하거나 외부의 충격 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레이놀즈(1986)는 군집 내에서 개체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아주 간결한 3가지 법칙을 정리했습니다.


1. 주변 개체과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Move in the same direction as your neighbors)

2. 주변 개체와 가까이 머무른다. (Remain close to your neighbors)

3. 주변 개체와의 충돌을 회피한다. (Avoid collisions with your neighbors)  



자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인 군집 행동인 새들의 비행 (source: wikipedia.org)



다음은 집단 행동입니다. 집단 행동에 대한 고전적 이론들은 구스타브 르봉(Gustav Le Bon,1897)의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군중들이 익명성이라는 장치로 인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되기 때문에 개인일 때와는 다르게, 주로 더 폭력적으로 행동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Contagion Theory로 명명되어 군중들 사이에 흐르는 비이성적, 폭력적 분위기에 휩쓸리어 개인 고유의 의식이 옅어지는 현상을 설명합니다. 이후 등장한 Deindividuation Theory (Zimbardo, 1969)는 르봉의 주장을 더욱더 정교화했는데요, 군중 행동 상황에서 환경적 요인(군중에 대한 소속감, 익명성 등)으로 인해 개인으로서의 자각이 약화되고 충동적 행위에 대한 저항이 느슨해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르봉이나 짐바르도의 이론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더 나아가 친사회적으로 행동하는 군중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지요.  

터너 등(1957)이 주장한 Emergent-Norm Theory는 군중들이 행동하면서 스스로 자신들만의 행동 규칙을 만들어나간다고 주장합니다. 미리 존재하는 규범이 없기 때문에, 어느 개인 또는 작은 그룹의 특별한 행위가 도드라지면 규범적 압박(normative pressure)에 의해 주위의 군중들로 확산되고, 결국 집단 전체의 규범으로 확정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 응원이 끝난 후 누군가가 근처의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마음을 움직여 청소를 시작하고 결국 길거리 응원단 전체의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떠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그러나 터너의 이론 역시 특정한 목적을 위해 모였거나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군중들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바로 Social Identity Theory (Reicher, 1984)가 이러한 빈틈을 채워줍니다. 군중 속 개인들의 사회적 자아 인식(스스로 어떤 사회(집단)에 속한다는 인식)이 군중행동의 규범을 제공한다고 주장인데요, 개인은 특별한 목적을 지닌 사회적 그룹의 일원으로서 군중에 참여한다는 이야기지요. Convergence Theory라고도 부르는 이 주장은 공동의 목표를 지닌 개인들이 함께 모여 의견을 표출하는 상황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를 더 발전시킨 Social Identity Model of Deindividuation Effects (Lea et al. 1991; Reicher et al. 1995)는 앞서 이야기한 Deindividuation Theory의 비개인화 개념을 추가로 적용합니다. 군중 속 규범과 개인의 인식 사이에 차이점이 존재할 때 군중에서의 익명성이 규범과 맞지 않는 개인의 특성을 무의식적으로 제한하여 군중과의 일치성을 획득한다는 주장입니다. 반대의 예를 들어볼까요? 엄청 폭력적 성향의 시위꾼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사람은 무언가 폭력적인 행위를 하고 싶고 군중들도 흥분시키고 싶지만, 군중 전반에 흐르는 규범이 '평화적이고 안전한 시위 지향'이라면 군중 속에서 튀지 않기 위해서 그 푝력적인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익명성이라는 외부 요인이 군중 내 소속감 획득을 위한 비개인화를 촉진한다는 이야기가 나름 논리적으로 들립니다.


군중의 행동 메커니즘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살펴보았는데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위에서 대중들의 행위는 Social Identity Theory 또는 Convergence Theory로 설명이 가능해 보입니다. 크라우드펀딩이라는 것이 프로젝트라는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대중들을 모으는 행위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 새롭고 긍정적인 Emergent-Norm이 만들어지게 되면 프로젝트의 성공에 날개를 달아주겠지요. 크라우드펀딩 컨텍스트 하에서 르봉의 Contagion Theory는 잠시 무시해도 좋아보입니다. 사람들은 더 큰 책임감을 갖고, 더 평화적인 방법으로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레벨을 하나 더 낮춰서 "인간은 왜 타인을 돕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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