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 <콰르텟>, 그리고 장수 브랜드의 공통점

우리가 여러 장르 속에서 조우하는 노인 캐릭터의 전형은 크게 양극단의 두 부류로 구분된다. 지혜의 상징이거나 유치함의 보루이거나. 그러니 우리들이 주변에서 마주치는 노인들, 그리고 그들을 모티브로 하는 캐릭터들은 지혜와 유치함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서성이고 있을 터이다. 기나긴 인생의 여정을 통해 삶의 지혜에 다다른 누군가의 한 손에 커다란 막대사탕이 들려있는 아이러니,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지닌 매력 아닐까? 우리들이 <꽃보다 할배>에 미소 짓고 <콰르텟>을 보며 감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할배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고 <꽃보다 할배>                                                                                                                   

공중파 출신의 스타 PD가 기획한 (평균 나이 76세) 노(老)배우들의 해외배낭여행기라는 컨셉만으로도 방송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던 <꽃보다 할배>는 여러 측면에서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 대박 기준(2%)을 훌쩍 넘은 7% (9월 평균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 상 쉽지 않은 2억 원대의 VOD 매출액을 달성했다. 내년 1월 새로운 시즌의 제작이 확정된 것은 젊은 스타 중심의 예능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꽃보다 할배>가 회심의 일격을 날렸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근거이다. <꽃보다 할배>의 흥행 요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일생 동안 연기 외길을 걸어온 노배우들의 새로운 (또는 유치한) 모습을 여행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 아닐까?

화려했던 성악가 4인방의 은퇴 일기 <콰르텟>                                                                                                                   

<꽃보다 할배>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큰 호평을 받은 영화 <콰르텟>은 <졸업>, <빠삐용>, <레인맨>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더스틴 호프만의 50년 연기 관록이 잘 묻어난 감독 데뷔작이다. 은퇴한 음악가들이 모여 사는 ‘비첨 하우스’를 배경으로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던 4명의 성악가들의 우정과 화해, 그리고 사랑을 다룬 이 영화는 스토리의 배경에서 예상할 수 있다시피 귀가 먼저 반응하는 영화이지만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늙어간다는 것’, 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잔잔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4명의 주인공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어려움과 서로 간의 오해를 극복하고 함께 무대에 오르는 엔딩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꽃보다 할배>, <콰르텟> 그리고 장수 브랜드                                                                                             

위 두 작품이 공통적으로 우리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이유는 평생 동안 한 우물을 파온 누군가의 새롭고 유쾌한 도전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역사와 전통에 대한 충만한 자부심을 지녔으며 동시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에 ‘젊은’ 영혼처럼 즐겁게 또 당당하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로 오랜 시간 동안 존경과 애정을 받아온 장수 브랜드들처럼 말이다. 

 

알고 보면 놀라운 장수 브랜드의 세계                                                                                                        

<꽃보다 할배>의 네 할배들처럼, 또 <콰르텟>의 네 주인공들처럼 전통과 도전, 그리고 즐거움의 이미지를 모두 갖춘 존재를 기업 경영의 세계에서 찾는다면 그 주인공은 단연 장수 브랜드일 것이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예상 외로 ‘늙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선사한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기업인 인터브랜드가 매년 발표하는 100대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Best Global Brand)의 경우 평균 나이가 약 95년(2012년 기준)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시장 경제의 역사가 긴 유럽이나 가족 경영의 기업 문화가 뿌리 깊은 일본의 경우, 100년 이상 지속된 브랜드 (또는 기업)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0년 이상 된 가족 경영 기업들의 모임인 '레 제노키앙(Les Henokiens)*' (7개국 33개의 회원사, 2011년 기준)이나 설립한 지 최소 300년이 지난 9개 기업들의 모임인 ‘테르 센테네리언 클럽’ (Ter-centenarians Club) 은 그 존재만으로도 장수 브랜드의 권위를 보여주고 있다.

 

장수 브랜드의 비결은 한 우물 정신 + 끝없는 도전 + 즐거움과 행복                                                                   

 장수 브랜드들을 분석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그 비결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바로 1) 한 우물 정신을 통한 전통성과 전문성 그리고 2) 끝없는 도전을 통한 혁신, 그리고 3) 즐거움과 행복을 전달하는 것이다. 위 세 가지 비결은 앞서 밝힌 두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으로 다음의 기업 사례들은 장수 브랜드들의 이와 같은 비결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 독일 카메라 브랜드의 신화인 ‘라이카’(Leica)의 경우 하나의 카메라가 완성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검수 과정이 무려 60가지나 되며, 고객 만족을 위해 1920년대에 제조된 카메라의 부품을 8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보관하고 있다.

- 1912년, 최초의 가정용 청소기인 룩스1(Lux1)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스웨덴 기업 일렉트로룩스(Electolux)는 이후에도 바퀴 달린 진공청소기의 최초 모델인 모델V(Model V)와 세계 최초의 로봇청소기 트릴로바이트(Trilobite)를 개발, 청소기 시장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 캐릭터인 ‘화이트 타이어 맨’ (정식 명칭 비벤덤)으로 더 익숙한 프랑스 기업 미쉐린(Michelin)은 1889년 세계 최초로 분리형 공기압 타이어를 개발한 곳으로 전 세계에 산재한 연구센터의 1일 누적 테스트 거리가 지구 둘레 25바퀴에 해당하는 18만㎞에 달한다. 그리고 미쉐린에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발행하고 있는 세계 최고 권위의 세계여행 및 레스토랑 안내지인 <미슐랭(미쉐린이 불어식 발음) 가이드>는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즐거움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 유년 시절의 고객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한 바비 인형(Barbie)이나 레고(Lego)는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지속적인 리뉴얼을 통해 세대를 이어 사랑 받는 제네레이션 키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존경과 애정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한국발 글로벌 브랜드 기대                                                                       

그렇다면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동화제약의 부채표 가스활명수가 유일하게 100년 이상 생존한 성공적인 브랜드로 존재하지만, 그 외에는 세계에 당당히 내밀만한 장수 브랜드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12년 맥킨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들의 브랜드 평균 수명이 약 15년인 데 반해 한국의 경우에는 10년이 채 못 된다고 한다. 아마도 새로운 것에만 환호하고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이러한 환경적 한계를 뛰어 넘어 전통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 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롭고 즐거운 도전을 통해 전 세계인의 존경과 애정을 한 몸에 받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끝.

 

* 레 제노키앙(Les Henokiens): 프랑스에서 1981년 설립되었으며 기독교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승천자이자 불사(不死)의 상징인 에녹의 이름을 따왔음. 이 모임의 회원사 대표들은 매해 3일간 모여 기업의 장수 경영을 위한 전략을 고민함

** 제네레이션 키퍼 브랜드: 바비 인형과 같이 특정 나이대가 되면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브랜드 또는 아이템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