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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김춘수 중에서)

 

꽃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 <프레셔스>                                                                                        

여기 한 뚱뚱한 소녀가 있다나이는 16할렘에 거주이름은 프레셔스 (Precious). 이름과 다르게 엄마로부터 갖은 학대와 멸시를 당하는 소녀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해 임신한 것이 이번이 두 번째글을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이 소녀는 임신 사실이 탄로나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게 된다.

 

너무나도 절망적이고 적나라해서 실감이 나지 않는 영화 <프레셔스>는 오프라 윈프리가 투자하고 머라이어 캐리, 레니 크레비츠 등의 유명 뮤지션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배우들의 실제와 같은 연기력을 등에 업은 수준 높은 완성도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비롯유수 시상식에서 멋진 성과를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퇴학을 당한 뒤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대안학교를 찾은 프레셔스는 그 곳에서 블루 레인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선생님의 권유로 일기 쓰기를 시작한다이후에도 지독한 불행과 고난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레인 선생님의 애정 어린 관심과 도움으로 프레셔스는 자신의 글을 통해 실낱 같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삶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 받은 것이다.

 

업사이클링, 버려지는 것들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수명을 다한 제품을 자원으로 활용하여 동일한 제품, 또는 유사한 무언가로 다시 만드는 작업을 재활용(Recycling)이라고 한다. 이에 더해 버려지는 자원들로 새로운 차원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바로 업사이클링(Upcycling) 이다. 업사이클링은 기존에 버려지는 것들을 다시 활용한다는 점에서 재활용과 동일하지만 무언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블루 레인 선생님이 프레셔스에게 그러했듯이 소외되고 버려지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들을 통해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업사이클링의 매력인 셈이다.

 


프라이탁, 완벽한 업사이클링 시스템의 표본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꼽자면 바로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 FREITAG 이다. 1999년 마르쿠스 &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가 설립한 이 회사는 트럭의 폐방수천, 자전거 바퀴 내부의 고무 튜브, 자동차 안전벨트 등을 소재로 하는 가방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2011년 기준) 연간 30만개의 가방을 제작하는 데에 390톤의 방수천과 8만개의 안전벨트가 사용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자전거를 교통 수단으로 이용하던 프라이탁 형제는 비 오는 날에도 안의 내용물이 젖을 걱정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튼튼한 가방이 필요했고 형인 마르쿠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들을 바라보다 지금의 브랜드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출시한 첫 제품은 뛰어난 실용성과 디자인을 갖추었다는 평가와 함께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동생 다니엘의 수완으로 체계적인 생산/유통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스위스 본사 공장에서의 수작업만을 원칙으로 하는 프라이탁은 평균적으로 2개월의 제작 기간이 필요한 만큼 판매 단가가 높은 편이지만, 이미 사용한 천의 일부분을 잘라내 만든, 즉 이 세상에서 유일한 제품이라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과 구매 욕구를 자극하게 된다. 버려지는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보여주는 셈이다.



랜드필 하모닉, 쓰레기 더미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희망                                                                              

이 세상에는 버려지는 무언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파라과이의 한 쓰레기 매립지역에 위치한 빈민촌에서 시작된 랜드필 하모닉 (Landfill Harmonic)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재활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 파는 일이 생업인 이 빈민촌의 사람들은 약물과 알코올 그리고 폭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그들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쓰레기 더미를 뒤져가며 살아가는 것이 정해진 미래였다. 그러던 2006년의 어느 날, 환경공학 전공자이자 재능 있는 기타리스트였던 이 마을 출신의 파비오 샤베즈 (Favio Chavez)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꿈을 심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런 그의 옆에 나타난 이가 바로 고물상이자 1달러의 가치도 지니지 않은 각종 고물들로 악기를 만드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니콜라스 고메즈 (Nicolas Gomez).

 

빈민촌의 아이들은 고메즈가 제작한 업사이클링 악기를 통해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곧 여러 음악가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전문적인 수준의 음악 교육이 이루어지게 된다. 몇 번의 콘서트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가 각종 매체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전세계적인 반향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현재는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활약 중인 샤베즈의 한 마디가 이 모든 감동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The world sends us garbage. And we send back music."  

 

 

새로운 의미와 가치, 그리고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업사이클링의 정착과 확대를 기대하며                                    

버려진 것 같던 프레셔스의 삶은 그렇게 끝날 것이 아니었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우주로부터의 선물이다.’라는 격언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그냥 버려지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폐방수천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프라이탁의 가방도, 쓰레기더미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 랜드필 하모닉처럼 말이다. 버려지는 것들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업사이클링이 하나의 사소한 트렌드로 끝이 나지 않기를, 그래서 더 많은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감당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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