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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들

결혼에 대한 단상

Sunghan Ryu 2011. 2. 25. 22:51

오늘 저녁, 대학원 동기 커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너무나 멋진 장소와 잘 어울리는 신랑과 신부, 감미로운 축가와 맛있는 음식 까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예식이었다. 피로연이 진행되던 중 옆에 앉은 동생과 회사 다니랴, 아기 보랴 정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내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무리 지으며 이런 이야기를 내뱉었다. "못난 남편 만나서 고생하는거지, " 둘이서 겸연쩍은 웃음을 짓고 있는데 옆에 앉아계시던 친한 교수님께서 나의 말을 듣고서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장난으로라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 는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지셨다. 그 때에는 알겠다며 웃어 넘겼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 상황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글로서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컴퓨터를 켰다.


오늘 예식의 주례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3가지 이벤트 (탄생, 결혼, 죽음) 중에서 오직 결혼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렇다. 결혼은 선택이다. 나는 누군가는 하지 않은 선택을 했고 그 결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새생명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얻었다. 물론 알차게 쓰던 자유시간이 많이 줄어들었고,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곱절 이상으로 늘어나 가끔씩은 뒷골이 땡기기도 하고, 딸아이를 재우느라 잠 못 이루는 밤도 늘었다. 휴일이 되면 연애 시절의 데이트는 이제 더이상 꿈도 꾸지 못하고 집안에서 하루 세끼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의 선택은 현실이 되었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그렇게 결혼을 일찍 했어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즐겨하는 대답이 있다. "너무 좋아서요!" 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약간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아무도 그것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달지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니깐 결혼한다는 것을. 다만 이 뒤집어진 세상에서 무언가가 약간 뒤틀려 있을 뿐이다. 조건, 조건, 조건.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을 달지 않겠다. 쓰자면 밑도 끝도 없이 기분만 상할테니깐.


성경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믿음과 소망, 이 멋지고 순결한 단어들보다 흔하디 흔한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부부 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답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 부부 간의 믿음? 이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리라 믿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기대는 높아지고 조그마한 실수 하나에도 서운한 마음이 눈 굴러가듯 불어나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나를 책임지리라 믿기 시작하는 순간, 책임질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부부 간의 소망? 이 사람이 언젠가는 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변하지 않는 상대방의 모습에 실망하고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잘 대해줄 거라는 소망을 갖게되는 순간, 상대방의 작은 무관심에도 배신감을 느끼기 시 작할 것이다. 결국 서로가 만나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되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이다. 다른 어떤 믿음이 필요하지 않으며 다른 어떤 소망도 가질 필요가 없다.


방금 전까지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설명할 수 없었던 불편함들이 어디로부터 기인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한 저 어리석은 발언은 '선택'으로서의 결혼에 대한 의미를 뭉개버린 셈이며, 즉 아내의 선택을 그 근본 뿌리부터 뽑아 흔들어 버린 셈이다. 또 하나는 아내의 '사랑' '믿음' '소망'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는데 나는 자격지심으로 스스로를 믿음과 소망의 허울 좋은 철장에 가두어버린 셈이다. 나는,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결혼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글을 정리해보자. 결혼은 선택이고 그 선택은 사랑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 선택 후에 찾아오는 모든 문제들과 어려움들은 단 하나로 해결 가능한데 그것 또한 사랑이다. 따라서 결혼은 사랑의 결실임과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사랑으로의 진입을 안내하는 깃발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결혼하고 싶은 자? 사랑하라! 사랑하고 싶은 자? 결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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