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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은 국내 음악계에 인상적인 장면을 여럿 남겼다. 영원한가객김광석이 세상을 등졌으며,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오늘 칼럼의 시작점이자 국내 아이돌 그룹의 시초 H.O.T.가 처음 그 모습을 선보인 해이기도 하다.    

 

SM 엔터테인먼트의 첫 작품 H.O.T., 한류의 물꼬를 트다

이수만 회장은 1995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설립하고 새로운 차원의기획에 돌입한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미국의 보이그룹 뉴키즈 온더블럭과 그들을 발굴한 모리스 스타의 트레이닝 방식을 롤모델로 삼은 것이 그 첫 단계. 10대 소녀들의 취향을 심도있게 분석하여 각 구성원의 캐릭터를 구상하고 이에 따라 음악 및 외모의 스타일을 기획했다. 또 어린 나이의 연습생들을 선발, 고강도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통해 기획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리고 1996 9, 드디어 H.O.T.가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데뷔곡전사의 후예는 의도한 대로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으나 후속곡캔디가 큰 성공을 거두며 소녀팬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이후행복’, “We are the future.”, “등의 곡들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H.O.T.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들의 콘서트 날, 서울 시내의 지하철 운행시간이 연장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2000 2, 베이징에서 열린 H.O.T. 콘서트는 중국 사회에도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드라마사랑이 뭐길래의 유행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던 시기였지만, 어린 소녀들이 H.O.T.의 숙소와 공연장 앞에서 울부짖는 모습은 중국인들이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이었다. 중국의 언론들은 이 현상을한류라는 활자로 대서특필했으며 이것이 한류의 실질적인 시작점이 되었다. 이렇게기획형 아이돌의 시대를 연 SM은 이후 신화, 동방신기, 슈펴주니어, 소녀시대, 엑소 등으로 이어지는 성공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SM 엔터테인먼트는 무엇이 다른가?

어느 분야든 그 전과 후를 극명하게 구분짓는 기업들이 있다. 음악산업, 더 넓게는 엔터테인먼트산업 분야에서 그 주인공은 SM H.O.T.. 특별히, H.O.T.의 성공은 새로운 차원의 기획이의도한 대로 적중했다는 것보다는 새로운 기획을 위해체계적인 분석과 전문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각 앨범의 타이틀곡(1전사의 후예’, 2늑대와 양) 흥행이 후속곡 대비 부진했다는 점을 살펴보면 그들의 인기가 온전히 기획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SM에 관심을 기울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과학적인 트레이닝 및 매니지먼트 시스템 도입, 해외 기획사들과의 활발한 합작, 최초의 코스닥 상장 등 이전의 음악산업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대한 성과의 기반에는 H.O.T.의 데뷔를 준비하던 시기부터 쌓아올린 SM만의 철학이 있다. 모든 것을 시스템화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문화산업과 같은 고위험-고수익 산업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연과 일회성에서 벗어나는 것라는 이수만 회장의 신념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정 개인의 능력과 기술이 핵심역량이 되는 분야에서는암묵지형식지로 전환시키는 핵심 과정을 통해 잠재된 위험이 제거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SM의 철학은 기업 내외부의 여러 활동들을 통해 증명된다.

 

SM이 도입한 국제협업 시스템송 캠프(Song camp)’를 살펴보자. SM은 전세계 500명 이상의 작곡가 그룹을 운영하며 매일 다른 해외 작곡가들을 서울로 초청해 작업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매년 완성되는 수천 곡과 소속 가수들을 매칭하여 새로운 음반을 런칭하는 방식이다. 또 최근에는 매년 유행가 100곡을 모아 가사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각 유행가의 주제와 문체 등을 분석하여 변화 동향을 살피고 “H.O.T.를 듣고 자란 엄마들과 엑소 팬인 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최종 목적이다

 

체계적 시스템에 대한 SM의 신념이 응축된 것이 바로 ‘SM 매뉴얼이다. 2000년대 초반에 도입된 ‘SM 매뉴얼은 부서별로 보유하고 있으며 해당 매뉴얼이 주요 의사결정시에 핵심 기준으로 적용된다. 이 매뉴얼들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지식과 잘못된 관행들이 발견되면 그에 따라 꾸준히 보완, 수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노래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그 노래가 성공한 이유를 기술적으로 분석하고 매뉴얼에 반영하는 식이다. 실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SM 엔터테인먼트와 매뉴얼의 기술

SM의 사업철학은 문화산업, IT산업 등 불확실성이 높은 산업군 내 플레이어들이 체계적인 시스템과 매뉴얼에 대해 어떤 태도와 전략을 가져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첫째, 매뉴얼의 작성 및 활용에 대한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목적이 없는 매뉴얼은 쓸모없는 정보의 나열이 되어 그 활용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SM의 매뉴얼은 기업의 핵심자산인 음악적 역량과 팬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화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2013년에 데뷔한 엑소는 그간 SM의 모든 노하우가 집약된 그룹으로 데뷔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는데, 그룹의 운영 방식이나 곡 선정, 그리고 데뷔 전후의 프로모션에 이르기까지 모든 프로세스가 매뉴얼 기반으로 기획,실행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둘째, 매뉴얼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프로세스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매뉴얼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분석은 한 번 실시해 결과를 얻는 일회성 작업이 아니라 꾸준한 시행착오 속에서 점진적으로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는 반복 작업이다. SM의 모든 팀들과 앨범들이 흥행에 성공할 수는 없지만, 각각의 성공과 실패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고 그것을 매뉴얼, 즉 시스템에 반영한다면 그 다음 순서의 성공 확률은 그만큼 올라가는 것이다. 어떠한 형태의 ‘SM 매뉴얼 100%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매뉴얼이 실패의 확률을 낮춰주리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셋째, 매뉴얼은 고객의 관점에서 제작되어야 한다. H.O.T.를 기획하던 시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SM의 모든 관심은 자신들의 아티스트와 음악을 경험할 팬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물론 초기에는 그 방식이 서툴고 비과학적이었겠지만, 10대 소녀들의 니즈를 파악하고자 했던 SM의 시도는 음악산업의 새로운 장을 여는 첫걸음이었다. 최근, 발라드 등 타 장르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아이돌 멤버들을 위한 소극장 콘서트디 아지트나 유망한 연습생들을 미리 선보이는 ‘SM루키즈 쇼의 런칭은 팬들과의 새로운 접점을 찾고 이를 전략에 반영하기 위한 SM의 또다른 시도다.

 

SM의 사업철학에서 예상할 수 있다시피  이들은 일치감치 IT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내의 IT 개발 업무와 서비스를 전담하는 IT서비스사업실의 직원 수는 ’15년 기준 50명으로 전체 조직의 2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앞으로 여러 채널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니 시스템과 매뉴얼을 중시하는 SM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된다

 

유행은 짧고 매뉴얼은 길다

 

혹자는 SM의 성공을 이수만 회장 등 핵심인력들의 음악적 감각이 시대적 유행에 편승하여 우연히 빚어낸 결과라 폄하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의 리더들이 자리를 떠나거나, 유행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이 오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회사라는 평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심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SM이 여러번 넘어질 수는 있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유행은 짧지만 매뉴얼은 길고 사람은 떠나지만 시스템은 남기 때문이다.

 


이수만 회장은 미국 유학 후 귀국하여 1989 SM기획을 설립하고 첫 소속가수로 현진영을 데뷔시켜 큰 성공을 거두지만, 이후 여러 악재들이 겹치며 큰 손실을 입은 뒤 1995 SM 엔터테인먼트로 개명하며 아이돌 기획사로 전환

 

 

[보너스] 1996년을 수놓은 작품들

미국: 미국 영웅주의의 정점을 찍고 컴퓨터 바이러스의 무서움을 알려준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20주년을 맞이하여 후속편 개봉 예정.

일본: <포켓몬> <유희왕>의 첫번째 시리즈, 그리고 변하지 않는동안’ <명탐정 코난>

홍콩: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홍콩영화 중 하나인 <첨밀밀>

한국: 지금의 넥슨을 가능하게 한 국내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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