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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에 위치하여 수도권 인구들이 자주 찾는 대표적인 근거리 피서지다. 매년 뜨거운 여름이 지나 피서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한적함이 느껴질 즈음 새로운 계절이 찾아온다. 가을이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가을의 가평은 꽤 쌀쌀한 바람이 부는별 일 없는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매해 10월이 되면 가평 인구 6만명의 4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북한강변에 자리잡은 자라섬으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올해 열두살을 맞은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하 자라섬페스티벌) 덕분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악축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자라섬페스티벌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악축제다. 음악축제로는 유일하게 2(’14~’15) 연속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 축제(만족도 1, 10~30대 인기도 1)로 지정되었고 누적 관객수는 170만명(’14년 기준)에 이른다. 여타 음악축제들과는 다르게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유모차를 끌고 찾아오는 진풍경도 자라섬페스티벌만의 경쟁력이다. 가평군은 자라섬페스티벌의 강력한 브랜드파워에 힘입어 지난해 경기도에서 주최한창조 오디션에서 1등을 차지하여 상금 100억원을 수상하였고 이를 활용하여 옛 가평역사에 뮤직빌리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가평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자라섬페스티벌은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2003년 가을, 인재진 자라섬페스티벌 총감독은 한 일간지 문화센터에서 진행된 특강에 연사로 참석하여 새로운 형태의 재즈페스티벌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소개했는데 마침 그 자리에 가평군의 막내 공무원이 앉아있었던 것. 그 공무원은 군내에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으로문화축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자 다시 그를 찾았다. 여러 후보지들을 살펴보며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을 확정 짓기 직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은 마지막 장소가 바로 자라섬이다. 비가 내리면 잠기는 섬. 이전까지는 아무도 찾지 않던 방치된 섬. 인 총감독은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던 자라섬에 재즈페스티벌을 유치해 국내 최고의 음악축제로 성장시켰다. 자라섬페스티벌의 성공에 숨은 비결은 무엇일까?

 

세가지 성공 비결(3C: Concentration, Challenge, Coexistence)

 

자라섬페스티벌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바로 집중(Concentration)이다. 2000년대 초반 지역축제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대다수 축제들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입김 때문에 명확한 방향을 잃은 채 방황하다 스러져갔다. 그러나 자라섬페스티벌은자연, 가족, 휴식이라는 콘텐츠와 배경으로의재즈를 핵심 기준으로 세우고 지금까지 이를 철저히 고수했다. 물론 자라섬페스티벌에도 시야를 흐리는 입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축제 초기 시절, 넓은 공간을 활용하여 한 켠에서는 서커스를 하고 무대 전환 시에 트로트 가수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아찔한 의견들이 많았지만 이에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자라섬페스티벌만의 고유한 프로그램은 지역축제로서는 경이로운 70%의 재정자립도를 달성하는 데에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두 번째 성공비결은 바로 끊임없는 도전(Challenge)이다. 자라섬페스티벌이 야심차게 첫발을 내딘 2004, 축제 둘째날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라섬은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했고 몇몇 관객들은 언성을 높이며 티켓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무대에서 아티스트와 관객, 그리고 모든 스태프들이 흠뻑 젖은 채 한 몸이 되어 어울렸던 벅찬 순간은 자라섬페스티벌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원동력이 되었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하며 전국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와 축제들이 취소되는 와중에도 자라섬페스티벌이 도전을 강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1회 때 폭우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관객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자라섬페스티벌은 그 해에 거의 유일하게 개최된 음악축제였고 폭발적인 관객수 증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마지막 성공 비결은 이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는 지역과의 공존(Coexistence)이다. 처음 자라섬페스티벌을 준비할 때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담당 공무원들이 인 총감독에게 돈을 내놓은 에피소드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2005년에 가평 내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 개관한 자라섬재즈센터와 이듬해 페스티벌 사무국 역할 수행을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는 가평군과 자라섬페스티벌 간의 견고한 신뢰관계를 증명한다. 특히 외부 지역에서 출퇴근하던 직원들이 센터의 상시 운영을 위해 모두 가평읍내로 거처를 옮기면서 자라섬페스티벌과 이들의 활동에 대한 평가도 더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가평주민들의 자원봉사자 지원이 늘고 있으며 많은 주민들이 자라섬페스티벌을 지역의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던 가평 내 아마추어 음악밴드의 수가 40개로 크게 성장한 것은 가평과 자라섬페스티벌이 함께 성장해나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2013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지역과의 공존에 달려있다

 

자라섬페스티벌의 성공비결에서 우리는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지역과의 공존이다. 특히 유럽의 많은 장수기업들이 지닌 특징 중 하나는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한다는 점이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바이엘의 사례를 눈여겨볼만하다. 1863년 설립되어 150살이 넘은 장수 기업 바이엘의 본사가 있는 레버쿠젠은 독일 공업의 중심도시 중 하나로 약 16만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이 중 2 5천여명(전체의 15%)이 바이엘에 근무하고 있다. 레버쿠젠 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바이엘이 역할이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기여와 함께 레버쿠젠의 큰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 바로 바이엘의 지역공헌 활동이다. 독일 최대의 스포츠 후원사인 바이엘은 수많은 경기장을 건립하여 레버쿠젠 주민들의 스포츠 활동을 지원하고 각종 문화행사들을 기획, 제공하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바이엘 사이에 오랜 기간 형성된 단단한 신뢰가 존재함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바이엘의 장수 비결은 지역주민들과의 밀접한 관계 형성을 통해 레버쿠젠과의 공존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지난 12년간 자라섬페스티벌을 이끌어온 인 총감독은,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아 지난 10월 제 48회 가평군민의 날 기념식에서 가평군민상을 수상했다. 가평 주민들이 자라섬페스티벌을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특별하다는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멘트를 곱씹어본다. 모두가 글로벌 시장 진출과 규모의 경제를 외치는 이 시대에 우리 기업이 뿌리내려야 할 곳은 어디일까?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몬트리올재즈페스티벌처럼 100만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 규모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가자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축제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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