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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가수들의 해외 순회 공연이야 너무 흔한 이야기지만, 고별 순회 공연이라면 그 무게가 남다르다.  오랜 시간 쇠락의 길을 걷다가 극적으로 부활에 성공하고 곧 전설로 남게될 이들의 노래라면 한 번 더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 여정 “Adiós Tour”의 끝자락에 이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o Vista Social Club)[각주:1] 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명성과 쇠락, 그리고 재도약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1940년대를 전후로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에서 명성을 날리던 사교 클럽이다.  당시 아바나 사람들은 손(Son)과 같은 쿠바 음악의 전성기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그 시절을 대표하던 음악가들이 즐겨 공연했던 장소가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그러나 그 명성도 잠시 뿐, 1959년 시작된 쿠바 혁명을 통해 정국을 장악한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주의 정권이 아바나 시민들의 향락적인 문화생활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이전까지의 문화는 곧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쿠바의 전통 음악이 대중들로부터 잊혀지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바나의 클럽들을 누비던 음악가들은 대부분 음악가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발레 교습소의 피아노 연주자로 살아가거나, 공장 노동자, 구두닦이 등 생계 유지를 위한 새로운 직업을 찾아 떠났다. 과거의 명성을 뒤로한 채 ‘쿠바의 음악’은 그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1989년 구소련의 붕괴로 쿠바를 포함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1990년대 중반, 쿠바는 경제 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관광산업의 중흥을 염두에 둔 시장 개방화 정책을 실시한다. 이러한 변화의 틈바구니에서 영국에 기반을 둔 월드뮤직 전문 음반사 월드 서킷 레코드(World Circuit Records)의 프로듀서 닉 골드(Nick Gold)는 이전부터 쿠바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에게 쿠바와 아프리카의 음악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앨범 제작을 제의한다. 이를 좋은 기회로 생각한 라이 쿠더는 아바나로 바로 떠나 말리의 음악가들을 그 곳으로 초청하지만 그들이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쿠바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어쩔 수 없이’ 쿠바의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쿠바의 전통 음악을 주제로 하는 앨범을 제작하기로 계획을 변경하고 당시 또 다른 쿠바 음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후안 곤잘레스(Juan González)와 새로운 팀을 이룬다. 이들은 아바나를 중심으로 쿠바 전역을 돌아다니며 함께 앨범 작업에 참여할 노장 음악가들을 섭외하고1996년 아바나 시내의 한 허름한 스튜디오에서 2주일 간의 녹음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이들이 함께 작업한 3개의 앨범 중 하나가 바로  <Buena Vista Social Club>이다. 이 앨범은 1997년 여름에 발매된 이후 입소문의 힘만으로 전세계적인 쿠바 음악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그래미 어워드(베스트 트로피컬 라틴 퍼포먼스 부문)를 수상한 것은 물론 월드뮤직 장르로는 기념비적인 8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다른이들은 은퇴 이후 평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을 시점에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멤버들은 런던, 암스테레담에서의 공연을 거쳐 전세계 음악가들의 꿈의 무대, 미국 카네기 홀에 서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 당시 주력 멤버들 일부가 80, 90대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감동의 수준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1999년 빔 벤더스(Wim Wenders)가 연출하여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된 동명의 다큐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이 카네기홀 공연의 실황이다.   


이후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이름 하에 크고 작은 공연들과 투어가 계속되었고 주요 멤버들의 솔로 앨범들도 큰 성공을 거두면서 쿠바 음악은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귀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급성장한 쿠바의 관광산업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쿠바 음악의 인기로 큰 이익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은 또 정직하게 흘러 원년 멤버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는 3명의 원년 멤버와 새로이 수혈된 쿠바의 실력파 음악가들로 구성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마지막 순회 공연을 진행 중이다.  남아있는 원년 멤버들도 언젠가는 자리를 비우게 되겠지만, 이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쿠바 음악의 새로운 영광은 인류의 노래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브랜드 고고학”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쇠락의 끝자락에서 부활하여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새로운 전설을 써내려 간 과정은 땅 속에 파뭍혀 있던 역사적 브랜드를 발굴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매력적인 스토리로 엮어내는 “브랜드 고고학”의 대표 사례로 부를만 하다. 닉 골드, 라이 쿠더, 그리고 후안 곤잘레스는 시간 속에 뭍혀있던 쿠바의 음악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음악을 새로운 스토리, 또 새로운 브랜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정신적 리더 콤바이 세군도(Compay Segundo)는 쿠바 혁명 이후, 담배공장에서 오랜 시간 노동자로 일했으며 이후 낮에는 이발사로 밤에는 음악가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또 가난으로 본인의 피아노를 가질 수 없었던 천재 피아니스트 우벤 곤잘레스(Uben Gonzalez), 구두닦이와 복권 판매 등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쿠바의 ‘냇 킹 콜’ 이브라힘 페레르(Ibrahim Ferrer) 등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멤버들의 고단했던 삶은 그들의 뛰어난 실력에 깊이를 더해 주었다. 또 그들 모두의 삶과 음악이 교차하는 무대를 통해 많은 이들이 큰 감동과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브랜드 고고학”의 시작, 몰스킨(Moleskine)   

“브랜드 고고학”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수첩 몰스킨의 성공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알려진 개념이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문구 공방에서 만들던 검은색 수첩의 통칭이었던 몰스킨은 예술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고흐는 여러 권의 몰스킨에 자신의 스케치를 남겼고 헤밍웨이도 자신의 작품을 몰스킨에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저가 수첩의 등장과 컴퓨터의 등장으로 인한 수요 감소로 공방들은 문을 닫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여기에 또다른 영웅들이 등장한다. 몰스킨의 매혹적인 스토리를 접한 두 명의 이탈리아 사업가들은 고흐, 헤밍웨이 같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던 몰스킨의 역사적 사실(‘The Legendary Notebook’)을 발굴하고 여기에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책(Unwritten Book)”이라는 새로운 컨셉을 더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이후 몰스킨은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담아내는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고 다른 수첩 제품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브랜드 가치를 구축하게 된다. 그들이 새로운 스토리와 브랜드로 재창조된 몰스킨을 세상에 소개한 때는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앨범이 출시된 1997년이다[각주:2]


어묵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부산 삼진어묵

한국에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스토리와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기업이 있다. 부산 삼진어묵이 그 주인공. 6·25 전쟁통에 부산 봉래동 시장에 처음 문을 연 삼진어묵은 서민들의 먹거리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먹거리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어묵은 점차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는 신세가 되버리고 말았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창업주의 손자가 가업에 뛰어들면서 또다른 도전이 시작되었다. 힘든 시절을 함께 버텨온 어묵의 고유한 가치와 스토리는 보존하되 이를 기반으로 어묵사업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어야만 했다. 어묵의 차별화를 위한 끊임없는 실험의 결과물인  ‘어묵 크로켓’과 고급 빵집 컨셉의 ‘어묵 베이커리’는 어묵사업의 처음과 끝을 새롭게 정의한 작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각주:3]. 전국 최초의 어묵역사관 설립은 고유한 가치와 스토리를 발굴하고 지켜내겠다는 삼진어묵의 의지를 보여준다. 부산에서 시작된 삼진어묵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서울 유명 백화점의 매장 개점 제안을 거절했다는 에피소드에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기억해야 할 것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잊혀진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위대한 첫 성공을 거두고 인기를 누리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내 사그라들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게 된다. 위기는 어떤 모양으로든 오기 마련이다. 쿠바의 전통 음악, 수첩, 그리고 어묵은 -각자의 이유로- 잊혀진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위기 상황에 마주했다.  누군가는 이미 잊혀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앞으로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잊혀지는 기업은 있으나 잊혀지는 산업은 없는 법이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마련이고, 또 살아남아야만 한다. 첫 성공의 역사와 이야기 위에 바로 서는 것이 첫 단계다. 이것을 무시한다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고 곧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이야기와 가치를 더하는 것이 또 다른 핵심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쿠바 전역을 돌며 새로운 음악가들의 조합을  이끌어 냈듯이, 몰스킨이 새로운 컨셉을 더해 창조적 계층을 포섭했듯이, 삼진어묵이 산업의 처음과 끝을 재정의했듯이 새로운 변화를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모든 기업들이 역사와 변화의 스토리로 단단히 무장하기를 응원한다.


끝. 




지난 3월 12일, 홍콩 아츠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투어 공연이 진행된 홍콩 아트 센터의 모습



  1.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환영받는 사교클럽’이라는 뜻으로 공식 영문 명칭은 Orquesta Bueno Vista Social Club이다. 고별 투어 이후에도 다양한 구성과 형태의 프로젝트로 앨범을 제작하고 공연을 지속할 계획이다. [본문으로]
  2. 몰스킨은 2013년 이탈리아 주식시장에 상장되었으며 (2014년 기준) 연 매출 98M 유로, 순이익 19M 유로(순이익률 20%)의 규모로 성장했다. [본문으로]
  3. 어묵 크로켓의 하루 평균 판매량은 3만개 수준이며 서울 유명 백화적 식품관에서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매장을 열었을 하루 최대 매출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삼진어묵의 연매출은 지난 5년간 10배 이상 성장하여 약 500억원 규모(15년 기준)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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