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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사우스웨스트항공이 기업 경영에 재미 요소를 적극 도입해 급성장하면서 펀 경영(Fun management 또는 Funagement) 개념이 처음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후 각종 연구와 사례들을 통해 그 효과성이 검증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펀 경영은 이제 전세계로 확대,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명확한 기준 없이 우후죽순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 이에 두 희극인을 통해 성공적 펀 경영의 실천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독보적 콘텐츠로서의 주성치

그 자신 스스로가 하나의 장르이자 독보적 콘텐츠로 존재하는 이가 있다. 1990 <도성>의 셀프 슬로우 모션 등장을 통해 코믹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주성치가 바로 그 주인공*. 이후 <식신>, <서유기-선리기연>, <월광보합>, <희극지왕> 등 주연 또는 직접 연출을 맡은 작품들이 연달아 큰 흥행에 성공하면서 대체 불가한 홍콩 영화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그는 <소림축구>, <쿵푸허슬>, <장강7> 를 통해주성치 스타일의 영화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강력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음을 증명해낸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주성치 영화만의 매력

지난 2, 국내의 주성치 팬들에게는 반가운,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소식이 들려왔다. 2013년 개봉하여 홍콩, 중국 등 중화권에서 흥행 신기록을 수립한 주성치 감독의 <서유기: 모험의 시작>이 뒤늦게 상영된 것. 5년의 기다림 끝에 만난 새로운 작품은 기쁨이었지만 그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볼 수 없다는 점은 못내 아쉬웠다. 중화권 영화에게 불리한 배급 구조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국내에서는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으나 주성치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호흡은 여전했다.

 

주성치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평범한 듯 독창적인 스토리텔링과 가벼운 듯 진지한 디테일에 있다. 서유기처럼 익숙한 스토리를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이야기 흐름 곳곳에 숨겨 놓은 이질적 요소들,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넌센스의 향연들(이른바, 모레이타우**), 원초적 웃음 코드 뒤에 따라오는 감동의 마무리 등이 대표적 특징들이다.

 

일반적 영화 언어의 범주를 벗어나는 특성 상, 주성치 영화를 향한 관객들의 호불호는 명확히 구분된다. 중간 지점은 없다.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의 불협화음 속에서 누군가는 썰럼함과 오글거림을, 또 누군가는 희열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많은 평론가들이 보편적 잣대로 주성치 영화를 평가절하하며 비웃을 때, 주성치 영화에입문한 사람들 간의 유대는 더욱 강화되었고 그 환호성은 점점 커져갔다.

 

유병재, 이 남자의 진지한 유머

그리고 최근 국내 방송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또 하나의 희극인. 유명 케이블 개그 프로그램의 방송작가이자 배우로 맹활약 중인 유병재다. 개그맨 지망생이였던 그가 제작한 뮤직 비디오 <니 여자친구 못생겼어>가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큰 화제를 모으며 연예계 데뷔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가 작가로 참여하거나 직접 출연하는 코너들을 살펴보면 주성치 영화의 그림자를 엿볼수 있는데,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가 제일 좋아하고 또 추구하는 바가 주성치의 개그 코드이기 때문이리라.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황당하면서도 진지하고 찌질해보이지만 동시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대한민국 환경에 최적화된 주성치식 캐릭터인 셈이다. SNS에 올라오는 가벼운 듯 진지한 그의 어록들도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국민의 간지러운 곳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집중적으로 간지럽힐 수가”, “어느 날 운명이 말했다. 작작 맡기라고.”와 같은 식.




 

주성치와 유병재, 그리고 펀 경영의 핵심 원칙

사우스웨스트항공이 그 시초가 된 펀 경영은 웃음과 재미가 넘치는 조직 분위기를 조성하여 구성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기업의 성과를 높이는 경영 기법이다. 미국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기업가로 손꼽히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창업자 허버트 켈러의 경영철학("재미는 조직의 화합을 위한 촉매제이며 일은 즐거워야 한다")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같은 펀 경영의 원칙을 조직원들과 고객들에게 충실히 적용한 결과,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창업 후 30년 넘게 연속 흑자를 기록한 우량기업으로 성장했으며 포춘지에서 선정하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명단에 항상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펀 경영을 실천하는 모든 기업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확고한 철학과 기준 없이 남들을 모방하는 데에 그친다면 일회성 이벤트에 비용을 투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이 필요할까? 주성치와 유병재의 개그코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원초적 재미가 있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확실한 재미 요소가 필요하다. 주성치 영화의 두서없는 슬랩스틱이나 유병재의 억울한 표정을 보며 모든 사람들이 (헛웃음이든 박장대소든) 웃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구성원들을 자연스레 웃음 짓게 만드는 핵심 아이템을 발굴해야 한다.

둘째,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그 재미의 효과가 감소하기 마련이다. 펀 경영을 실천하는 한 벤처기업의 경우, 1년에 총 4번 전 직원이 함께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옷을 구매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패션쇼를 개최해 동료들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직원에게는 별도의 상금을 지급한다. 매번 의외의 재미 요소가 발굴될 수 있는 훌륭한 아이디어인 셈.  

마지막으로, 의미있는 재미여야 한다. 원초적 재미만으로도 구성원들의 스트레스 관리와 업무 분위기 개선이 이루어질 수는 있지만 더 높은 차원의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진지함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국내의 대표적 펀 경영 실천기업들 중 하나는 직원들의 (직장 생활에 대한) 소원 실현을 실천 목표로 설정하고 회사의 모든 역량을 이에 집중하고 있다. 자신과 동료들의 소원이 실현되는 과정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구성원들이 즐거움과 보람을 동시에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으이라. 대부분의 소원들이 이미 실현된 가운데, 아마도 마지막 목표가 될 소원은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회사가 되는 것이다.

 

웃음 속 진지함이 펀 경영의 성공 열쇠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영화 속 어수룩하고 자유분방한 모습과는 달리 감독으로서의 주성치는 완벽주의자다. 연출하는 영화마다 제작 기한을 넘기는 것은 물론 그의 치밀함에 치를 떨며 떠나는 배우들도 많아졌다. 그가 직접 연출한 작품들이 배우로만 참여한 작품들에 비해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게 우연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유병재도 5분짜리 방송 대본의 초안 작성을 위해 위해 10시간 넘게 작업하는 노력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웃음과 재미 뒤에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숨어있는 셈. 성공적 펀 경영의 실천을 위해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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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의 공식 데뷔작은 1988년의 <벽력선봉>으로 그 당시 유행했던 홍콩 느와르물

** 모레이타우(無厘頭): 영어로는 nonsense talk라고 하며 두서없이 전개되는 주성치 식 코미디를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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