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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한가위를 전후로 한 국내 극장가의 성수기 흥행전은 영화 그 이상의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우선 1,760만 관객(101일 기준)을 동원하며 최고 흥행 기록을 갱신한 <명량>을 비롯하여 <해적>(860), <군도>(477), <타짜>(390) 등 한국 영화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주목을 받은 주인공은 쟁쟁한 한국 영화들 사이에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비긴 어게인>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울려 퍼진 위로와 희망의 노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치열한 흥행 전쟁 틈바구니에 놓인 예술영화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2006,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에 <원스> 신드롬을 일으킨 존 카니 감독의 새로운 프로젝트로 음악영화 마니아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비긴 어게인>8월 국내 개봉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 영화의 선전을 기대했던 관계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여름 성수기와 한가위 시즌을 겨냥한 국내 대작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넉넉한 개봉관을 확보하는 것 조차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개봉일 기준) 185개관에서 약 400회의 상영횟수로 출발한 <비긴 어게인>은 앞선 관객들의 입소문을 등에 업고 높은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일반적인 수순과는 다르게 상영관 수를 점점 더 늘려가기 시작했다. 101일을 기준으로 511개 관에서 2,400회 이상 상영된 <비긴 어게인>은 다양성 영화* 최초로 누적 관객수 300만 명을 달성했고 매출액 기준으로는 북미의 흥행 수익을 뛰어넘어 전세계 1위의 흥행 기록을 세운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비긴 어게인>은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래서 결국은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음악 활동의 동지였던 남자친구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자신을 떠나자 실의에 빠진 싱어송라이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扮)와 한 때는 잘나갔지만 아내와의 불화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한물간 음반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 扮)의 만남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들이 음악을 통해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또 유쾌하게 담아낸다.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는 영화이지만, 뉴욕의 민낯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길거리 밴드의 음반 녹음 장면이 <비긴 어게인>의 매력이 꽃을 피우는 지점이다.


예술영화답지 않은 초호화 캐스팅 덕분이라는 둥, 감독의 이전 작품인 <원스>의 후광 효과라는 둥, 영화음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둥 흥행에 대한 분석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독 한국에서 이렇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비긴 어게인>이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영화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이야기 말이다.



쉽지만은 않은 기업들의 재도전기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것은 기업도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한 기업에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서려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그 절실함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현실이 항상 해피 엔딩일 수는 없는 법. 흔히 전쟁으로 비유되는 기업 환경에서라면 그런 기대는 빨리 접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세기,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 중 하나로 손꼽히던 소니는 애플과 삼성 등의 경쟁사들에게 시장을 빼앗기며 창립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명성 회복을 위해 새로운 성장 전략 수립과 혁신적인 신제품 출시를 통해 전세 역전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4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한 것은 물론, 올해의 적자 규모는 2300억엔(22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1958년 상장 후 처음으로 무배당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유럽의 대표적 글로벌 미디어 기업인 비방디(Vivendi)**의 사례도 눈여겨볼만하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수도사업자로 시작, 공공 부문 사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하여 유럽 경제의 호황과 함께 황금기를 누렸던 이 회사는 경영 환경의 급변과 무모한 사업다각화로 인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대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1995,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이 영입된 스타 CEO 메시에(Jean-Marie Messier)는 비관련 다각화 사업들을 정리하고 핵심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성공적인 조직 구조 개편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낸 메시에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으로의 전환을 새로운 전략 방향으로 설정하고 여러 미디어 분야의 기업들을 인수하기 시작했고 2001년에 이르러서는 음악, 영화, 게임, 방송, 통신 분야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성공적인 재기에 안착한 듯 보였다. 그러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무모한 확장의 부작용으로 인해 2002년에 프랑스 역사상 최대 규모인 233억 유로(28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한다. 메시에는 CEO 자리에서 해임된 것은 물론 그 책임을 물어 고소까지 당하게 된다. 이후 비방디는 적극적인 다운사이징을 통해 부도의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현재까지도 만성적인 수익성 악화로 신음하고 있다.

 

성공적인 재기를 위해서는 본질에 다시 집중해야                                                                                           

그 사례가 드물기는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화려하게 복귀한 기업들의 신화가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LG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 <관성(Inertia)에 빠지지 않고 일관성으로 재기에 성공한 기업>에 따르면 재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들(애플, 디즈니, 레고, 도요타)의 공통점은 자신을 대표하고 고객도 공감하는자기다움존재이유를 되찾은것에 있다. 그에 비해 단순히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이나 기업의 핵심 철학 및 역량과 무관한 신규 사업 진출로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던 기업들의 말로는 그리 우아하지 않았다. 비방디가 재기에 실패했던 이유도 전도유망한 미래 산업에만 집중한 나머지 자기 스스로와 고객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부족하게 했던 탓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멋지게 활약했던 많은 우리의 기업들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고 경쟁사들의 동향을 살피며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본질을 다시금 확인 하는 일이리라. 만약에 그 본질이 애초에 없던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 당당하게 소리내야 하지 않을까? <비긴 어게인>의 마지막 장면, 그레타와 댄의 용단이 우리 기업들에게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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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다양성영화란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된 자본이나 저예산으로 찍은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말한다. 여러 선정 기준이 있는데 <명량>190억 원보다 더 많은 25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비긴 어게인>의 경우, 음악을 다룬 예술영화로 평가 받아 다양성영화 자격을 얻었다. 개봉 시, 200개관이나 하루 840회 이상 상영하는 작품은 신청을 할 수 없다.

 

** 비방디(Vivendi)의 원래 사명은 Compagnie Generale des Eaux (CGE, General Water Company를 의미)였으며 1997Vivendi, 2000년 영화사업에 진출하며 Vivendi Universal로 변경함. 이후, 영화사업 부문을 매각하며 다시 Vivendi로 복귀.

 

추천! 뉴욕을 배경으로 음악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


- 어거스트 러쉬 (2007): 음악의 끈으로 연결된 가족에 대한 마법 같은 이야기. 영화적 비약이 지나치다는 관점도 있지만, 최고의 음악감독들과 뮤지션들이 참여한 OST만으로도 가치 있는 영화.    


- 인사이드 르윈 (2013): <비긴 어게인>의 비극 버전. 구질구질한 인디 뮤지션 르읜의 너덜너덜한 삶이 소소한 유머와 함께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코엔 형제의 작가적 구성이 돋보이는 이야기.


- 마지막 사중주 (2012): 리더이자 멘토인 첼리스트 피터의 건강 악화를 계기로 베테랑 현악 4중주단 푸가의 골 깊은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베토벤의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인생의 아름다운 불협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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