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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2013 10 1 KAIST 경영대학에서 진행된 신의항 교수(서울대)<행복의 사회학> 강연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행복과잉 한국 사회, 그리고 불행한 청소년들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행복만큼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기업의 광고 문구에서, 그리고 대통령의 연설문에서도 빠지지 않는 단어가 바로 행복이다. 문제는 한 사회에서 어떤 단어가 비정상적으로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 그 단어에 대한 이상과 현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학업 성취도는 세계적으로 최상위권 수준에 속하지만 이들의 행복도는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는 OECD의 연구 결과는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왜 불행할까? 그 원인을 개개인의 상황에서 찾기에는 대한민국 사회가 너무 멀리 와버렸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 그리고 그 안에 속한 개인의 특성이 행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밝혀내는 것, 바로 <행복의 사회학>이 피어 오르는 지점이다.

 

행복의 정의와 구성 요소                                                                                                                     

범학문적으로 인정 받는 개념적 정의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 견해를 종합하면 행복은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하는 상태 (Positive Emotional State)”라 말할 수 있다. 이는 유지된다는 점에서 기쁨이나 즐거움과는 구분되며 감정적이라는 점에서 쾌락이나 흥분과 구분된다. 또 행복은 감정적인(affective) 요소로 구성된 주관적 측면과 인지적인(cognitive) 요소로 구성된 객관적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주관적 측면은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의 수준 차이로 표현되며 객관적 측면은 수입, 정치적 자유, 인간 관계, 건강 등과 같이 사람들이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행복에 관한 여러 연구들은 주관적 측면이 객관적 측면에 비해 더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밝혀냈는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좋은 스펙보다는 좋은 감정이 행복한 삶을 위해 더 유익하다는 것이다.

    

누가 더 행복할까?                                                                                                                             

인류의 행복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은 행복을 주제로 연구하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들의 노력으로 행복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연구 결과들이 소개되고 있다. 가장 손쉬운 접근 방식은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따라 행복의 수준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것이다. 개별 연구에 따라 그 결과나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청장년층보다는 유소년층과 노년층이, 남자보다는 여자가, 미혼자보다는 기혼자가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난다. 청장년층의 행복도가 낮은 것은 경제활동으로 인한 부담감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남자의 행복도가 낮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양성 간의 행복도 차이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기혼자가 미혼자에 비해 더 행복한 것은 부부생활로부터 얻는 부정적인 감정(갈등, 스트레스)보다는 배우자를 통해 얻는 긍정적인 감정(안정감, 소속감)이 더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행복하며 이 경향은 저소득 국가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고용 방식에 따른 차이를 보면, 자영업자(self-employment)들이 직장인들에 비해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자영업자들이 전반적으로 (의사결정 등에서) 더 높은 수준의 자유를 누리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외에도 꾸준한 종교생활, 활발한 사회 활동 참여 등이 사람들의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돈과 행복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수록 더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개인의 실제 소득 금액 (absolute income)과 상대적 소득 금액 (relative income) 모두 행복과 높은 상관 관계를 보이며, 둘 중에서는 상대적 소득 금액의 영향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인간의 욕구를 설명한 사회비교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으로 설명 가능한데, 똑같은 수준으로 실제 소득 금액과 상대적 소득 금액을 증가시켰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수 배 차이가 난다고 하니 비교의 욕망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으로 시야를 넓히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1974년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은 국가의 부()가 어느 수준에 오르게 되면 소득 증가가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론을 발표한다. '이스털린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 이름 붙여진 그의 연구 결과를 보면 한 국가 안에서는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국가끼리 비교해 보면 국민의 행복지수가 1인당 소득과 비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다른 연구자들의 반박 주장에 대한 대응으로 발표한 2010년 논문에는 한국이 대표적인 이스털린 역설의 사례로 등장한다. 20년도 안 되는 기간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배 이상 증가했지만,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관점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                                                                                                  

여기 마시멜로우 실험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또 다른 연구의 결과를 살펴보자. 1972, 스탠포드 대학의 월터 미셸(Walter Mischel) 4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의 실험을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우를 하나씩 나눠 준 뒤, 15분을 참고 있으면 상으로 하나를 더 준다고 제안하고 15분을 참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분류한 뒤 약 14년 뒤에 그들을 추적 조사한 것이다. 결과를 분석해보니 유횩을 잘 참아낸 아이들이 그렇지 않는 아이들에 비해 학업 성취도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만족감을 유예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다는 것을 증명한 것으로 추후 자기 계발서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1999, 위 연구를 기반으로 보다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한 짐바르도(Philip Zimbardo)와 보이드(John Boyd)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시간에 대해 지니는 관점(Time Perspective) 5가지로 구분하고 (Present-Hedonistic, Present-Fatalistic, Future-Oriented, Past-Positive, Past-Negative) 각 관점에 따라 어떤 특성 차이를 보이는지 밝혀냈다. 일단, ‘마시멜로우 실험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미래 지향적(Future oriented), 즉 만족감을 유예할 수 있는 학생들의 경우 개인의 성과 (학점, 공부 시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미래 지향적인 관점이 그들이 느끼는 행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증명되었으며 오히려 과거 긍정적(Past-positive)인 관점이나 현재 쾌락적(Present-Hedonistic)인 관점을 지닌 학생들이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만족감 유예의 결과물인 사회적 성공과 행복이 서로 단짝을 이루고 있지 않음이, 더 나아가 바로 입 속에 들어간 마시멜로우가 더 큰 행복을 선사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행복은 바로 지금 이 곳에                                                                                                                    

행복의 사회학에서 이끌어낸 여러 연구들의 결과물을 종합해보면 행복이란 먼 미래나 커다란 성취에 있다기 보다는 현재의 소소한 일상에 숨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란 그들이 미래의 성취에 집중하느라 가족과 친구, 그리고 현재의 소중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리라. 왜냐하면 행복은 바로 지금 이 곳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끝.


참고문헌

Easterlin, R. A. (1974). Does economic growth improve the human lot? Some empirical evidence. Nations and households in economic growth, 89

Easterlin, R. A., McVey, L. A., Switek, M., Sawangfa, O., & Zweig, J. S. (2010). The happiness–income paradox revisited.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7(52), 22463-22468.

Mischel, W., Shoda, Y., & Rodriguez. (1989). Delay of gratification in children. Science, 244, 933–938

Zimbardo, P. G., & Boyd, J. N. (1999). Putting time in perspective: A valid, reliable individual-differences metric.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7(6), 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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